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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63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축구 팬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대사건,

1950년 브라질에서 일어난 '마라카낭의 비극'을 소개합니다.

마라카낭의 비극은 안방에서 첫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싶어했던

브라질의 꿈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변하면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입니다.

1950년 FIFA 월드컵의 개최권을 따내고 참가한 브라질은

1차 조별 리그 개막전에서 멕시코를 4:0으로 제압하여 기분 좋은 출발을 한 후

스위스에 2:2로 비기지만 유고 연방을 2:0으로 꺾고 당당히 결선 리그에 진출합니다.

(당시에는 흥행을 위해 결선 라운드도 리그전으로 치렀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아예 지역 예선전부터 기권한데다가

대회 3연패를 노렸던 이탈리아는 '수페르가의 참사'가 대표팀에 악영향을 미쳐

스웨덴에게 2:3으로 덜미를 잡히며 결선 리그 진출이 좌절되었으며

또 다른 경계 대상이었던 잉글랜드도 약체로 분류되었던 미국에게 덜미를 잡히는 굴욕을 겪더니

스페인에게까지 패배하며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습니다.

단지 우루과이만 볼리비아를 8:0으로 가볍게 제압하고 올라왔을 뿐입니다.

이로써 브라질의 상대는 스웨덴, 스페인, 우루과이로 정해졌습니다.

브라질의 첫 상대는 이탈리아를 꺾고 올라온 스웨덴.

과연 골폭풍이 휘몰아치며 7:1로 가볍게 제압합니다.

두 번째 상대는 잉글랜드를 꺾고 올라온 스페인.

역시 6:1 대승을 거두며 2전 전승으로 우승 앞에 성큼 다가선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반면 우루과이는 스페인과 2:2 무승부를 거두고

스웨덴을 상대로도 3:2로 겨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루과이는 브라질의 적수가 될 수 없어 보였습니다.

브라질이 매 경기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준 반면

우루과이는 볼리비아전을 제외하고는 고전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브라질은 무승부만 해도 우승을 확정짓는 것과 대조적으로

우루과이는 반드시 승리해야 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브라질이 훨씬 유리했습니다.


▶ 분위기에 취한 브라질, 김칫국부터 마시다

이렇게 되자 어느 누구도 브라질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 분위기였고,

브라질 현지에서는 아예 경기 며칠 전부터 우승을 한 것과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자국 국대의 우승을 축하해 줄 준비를 다 끝냈을 정도였지요.

드디어 운명의 날, 월드컵 마지막 날인 7월 16일은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사실상의 결승전이라 할 수 있는 브라질과 우루과이의 마지막 경기가 열린 마라카낭 경기장은

개장하자마자 자국의 우승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지켜보고자 하는 브라질 축구 팬들이 몰려

삽시간에 초만원을 이루었습니다.

공식 집계된 관중 수는 173,850명이었지만 실제로는 20만명이 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만 봐도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심지어는 그 당시 우루과이 선수단까지 그 분위기에 압도되었을 정도입니다.


▶ 의지가 굳은 정신적 지주

하지만 시종일관 이에 굴하지 않은 선수가 딱 한 명 있었으니,

당시 우루과이 국대의 주장이던 옵둘리오 바렐라(Obdulio Varela)였습니다.

당시 우루과이 감독이었던 후안 로페스(Juan L?pez)가 라커룸에서 수비적 경기를 주문했는데

그가 나가자마자 옵둘리오 바렐라가 일어서서 선수들에게 말하기를

"후안 로페스는 좋은 감독이야. 하지만 오늘 그는 오판을 했어.

만일 우리가 브라질을 상대로 수비적으로 나온다면, 우리는 스페인이나 스웨덴 꼴이 날 거야."

그리고는 '세계 최고의 팀'과 경기장을 가득 메운 그 팬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마지막에는 축구 역사에 길이 회자될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제3자는 경기를 하지 않아. 우리가 쇼를 보여주자!"


▶ 운명의 킥오프

바렐라의 한 마디에 선수들은 감동하여 킥오프가 시작되자마자 공격적인 경기를 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예상과는 달리 전반전은 브라질도 우루과이도 골을 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기대했던 골이 터지지 않은 게 좀 답답했지만 팬들은 그래도 브라질의 우승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의미인지 후반 2분 브라질의 프리아카가 선제골을 넣었습니다.

관중석 곳곳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고, 브라질의 우승이 거의 기정사실화된 분위기 속에서

우루과이 선수단은 "이제 다 끝났구나"면서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그 와중에도 바렐라는 조금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직접 공을 들고 나와서는 하프라인에 올려 놓더니

"이제 우리가 이길 때가 되었다!"

하고 선수들에게 외칩니다.

이 한 마디에 우루과이 선수들은 승리의 의지를 불태우며 맹렬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고

브라질 선수들은 당황하여 자꾸만 허점을 보이면서 불안한 상황을 만들어 갔습니다.

후반 21분이 되자 우루과이의 공격수 후안 알베르토 스치아피노(Juan Alberto Schiaffino)가

브라질의 골키퍼 모아시르 바르보사(Moacyr Barbosa)의 허점을 파고들어 동점골을 기록,

브라질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승부를 20분도 안 되어 원점으로 돌려 놓습니다.

갑작스러운 동점골에 마라카낭의 브라질 관중들은 초조한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패배하지만 않는다면 우승은 확정되기 때문에 여전히 승리를 의심하진 않았습니다.

"에이, 설마. 그렇다고 지기야 하겠어?" 하는 분위기였지요.


▶ 설마가 사람 잡는다

하지만 설마했던 그 상황이 실제로 펼쳐졌습니다.

동점골이 터진지 13분만인 후반 34분 우루과이의 공격수 알키데스 기지아(Alcides Ghiggia)가

바르보사의 허점을 파고들어 두 번째 골을 기록하여 역전을 합니다.

열광의 도가니였던 마라카낭의 관중석은 어느새 침묵에 빠졌고

브라질 선수들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멘붕'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든 기지아의 골을 만회하려고 했지만 우루과이는 기지아의 골을 잘 지켜내며

어느 쪽도 더 이상의 추가득점 없이 경기 종료.

이로써 우루과이는 2승 1무가 되어 2승 1패인 브라질을 제치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 비극의 시작

우루과이가 브라질에 2:1로 승리한 상황에서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마자

거짓말처럼 우승을 놓쳤다는 사실에 브라질 전역은 비탄에 빠졌습니다.

당시 FIFA 회장이었던 쥘 리메도 브라질의 우승을 예상하고

포르투갈어로 된 우승 축하 연설문만 준비했습니다.

예상외로 우루과이가 우승하자 스페인어로 된 우승 축하 연설문을 다시 작성하려 했으나

경기장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감지하고는 시상식을 약식으로 대충 할 수밖에 없었고

우루과이 선수단은 시상식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겁을 먹고 경기장을 빠져나와

도망치듯 바로 우루과이로 귀국을 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FIFA는 월드컵 시상 메달을 만들지 않았던 시절이라

브라질 축구 협회에서 미리 브라질 선수 22명의 이름이 새겨진 금메달을 만들었으나

브라질이 우승에 실패하자 바로 폐기되는 신세를 겪었습니다.

또, 브라질 우승 기념곡이었던 'Brasil os vencedores'도

브라질이 우승에 실패하자 다시는 연주되지 못했습니다.

그 외에도 브라질 전역에서 준비된 수많은 우승 기념 행사도 순식간에 전부 취소됐습니다.

휘슬 소리가 울려퍼지는 순간 관중석에서 브라질 축구 팬 중 2명이 자살하고

또 2명이 심장마비로 그 자리에서 사망하는 끔직한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마라카낭 관중석을 가득 메웠던 브라질 축구 팬 중 절반 정도가 밤새도록 관중석에 앉아 통곡했으며,
집집마다 조기(弔旗)가 게양되고 권총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자국 국대가 우루과이에게 패배해 우승을 놓친 것에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한 팬들이 폭동을 일으켜
여기저기서 사고가 속출하기도 하는 등 브라질은 그야말로 국가 비상 사태에 빠졌습니다.

▶ 그 후

브라질 축구 협회는 그 당시 선수들이 입었던 흰색 유니폼을 전부 수거하여 소각한 후
국대 유니폼의 디자인을 지금과 같은 녹색 줄무늬가 있는 황색 상의와 청색 하의로 바꾸었습니다.
당시 뛰었던 선수들도 쇄도하는 비난 속에서 은퇴하거나 두 번 다시 국대에 선발되지 못했습니다.
특히 당시 골키퍼였던 바르보사는 은퇴한 뒤 코치로 새출발하고자 했으나
브라질 축구 협회로부터 패배의 징크스를 가진 사람을 쓸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축구 해설위원이 되려는 것도 브라질 축구 협회에서 막았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2000년에 79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브라질에서는 아무리 흉악범죄자라 할지라도 43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 경기에서 패배했다는 이유로 50년이나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왠지 안타까울 따름이네요.
한편, 그날 브라질이 우루과이에게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눈물을 삼키며
브라질을 최강의 자리에 올려놓겠다고 맹세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그 유명한 펠레입니다. 그는 8년 후 스웨덴에서 개최된 월드컵에서
18살의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에 발탁, 정말로 브라질의 우승에 기여하게 됩니다.

글이 재미있었나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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