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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이탈리아 대표로 출장한 로베르토 바조(Roberto Baggio)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저 말총머리로도 유명하지요.

이 선수가 바로 승부차기 때문에 역적으로 추락한 그 선수입니다.

1994년 7월 18일 오전 5시 35분(한국시각) 벌어진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도 이탈리아도 득점이 단 1득점도 없어서 승부차기까지 갔는데,

그 승부차기에서 이탈리아의 5번째 키커로 나온 R. 바조가 실축을 함과 동시에 이탈리아의 우승이 좌절되자

R. 바조는 한동안 이탈리아 축구 팬들로부터 역적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R. 바조는 이탈리아가 결승에 올라가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그 선수였습니다.

어제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선수가 오늘은 역적으로 추락한 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유럽 지역 예선을 통과한 이탈리아는

조 추첨 단계에서 노르웨이, 멕시코, 아일랜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들 지역 예선에서 선전한 팀이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죽음의 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시작부터 험난한 길을 걸을 것이라 예상된 이탈리아.

첫 경기인 아일랜드전에서 0:1로 덜미를 잡힙니다.

그 다음 노르웨이전에선 디노 바조(Dino Baggio)의 결승골로 간신히 1:0 승리를 따냅니다.

마지막 멕시코전에선 1:1로 비겨 1승 1무 1패.

4팀이 전부 1승 1무 1패로 동률이 되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골득실마저 전부 ±0으로 같은 가운데 일단은 멕시코가 3득점으로 조 1위를 거두며 16강 직행,

노르웨이는 1득점으로 조 4위를 거두며 16강 진출이 좌절되었습니다.

문제는 똑같이 2득점인 아일랜드와 이탈리아인데,

아일랜드가 이탈리아를 1:0으로 이겼으므로 승자승 원칙에 의해 아일랜드가 조 2위,

이탈리아는 조 3위로 밀려나며 16강에 턱걸이로 진출합니다.

승승장구할 것이라 믿었던 이탈리아가 겨우 16강에 간 모양새가 되었기 때문에

이탈리아 축구 팬들의 우려와 비난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그렇게 16강에 가서 만난 상대는 카메룬의 검은 돌풍을 재현하려는 나이지리아.

전반 10분 에마뉘알 아무네케(Emmanuel Amuneke)에게 선제골을 허용해 위기를 맞았으나

후반 43분 R. 바조의 극적인 동점골로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고,

연장 전반 10분 R. 바조가 페널티킥으로 역전 결승골을 성공시켜 8강 진출에 성공합니다.

그러자 이탈리아 축구 팬들의 비난 여론이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8강 상대는 스페인. 여기서 이탈리아는 전반 25분 D. 바조의 선제골로 앞서 나가고

후반 13분 호세 루이스 카미네로(Jos? Luis Caminero)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나

후반 42분 R. 바조의 결승골이 터지며 2:1로 승리하고 당당하게 4강에 진출합니다.

이탈리아 축구 팬들의 비난 여론은 거의 사그라들고 기대감을 갖게 됩니다.

특히 팀의 승리에 크게 기여한 R. 바조에게 거는 기대감은 남달랐습니다.

4강에서 만난 상대는 아르헨티나와 멕시코에 이어 독일까지 쓰러뜨리는 이변을 일으킨 불가리아.

이탈리아는 R. 바조가 전반 20분과 25분에 연속골을 터뜨렸습니다.

전반 44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Hristo Stoichkov)에게 만회골을 허용하지만

이후 더 이상의 추가실점 없이 2:1 승리로 결승에 진출합니다.

여기서도 R. 바조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기 때문에

이탈리아 축구 팬들은 R. 바조를 영웅으로 추켜세웠습니다.

심지어는 "R. 바조를 대통령으로!"라고 외친 팬들도 있었을 정도였으니

그 기대감이 얼마나 컸을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세계의 축구 팬들도 1993년 FIFA 올해의 선수상(現 FIFA 발롱도르)에 빛나는 R. 바조의 활약이

과연 결승전에서도 그 빛을 발할지 관심이 쏠려 있었습니다.

결승 상대인 브라질에서는 호마리우(Rom?rio)가 맹활약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에

결승전에서 성사될 호마리우와 R. 바조의 대결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주: 1993년 FIFA 올해의 선수상에서 R. 바조는 1위, 호마리우는 2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렇게 세계의 이목이 전부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패서디나의 로즈 볼 경기장에 집중된 가운데,

킥오프가 시작되었으나 이탈리아 축구 팬들의 기대와 달리 이탈리아는 득점을 올리지 못했고

브라질 역시 득점을 올리지 못하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팬들의 큰 기대를 받았던 R. 바조도, 호마리우도 골을 터뜨리지 못하고 있었고,

90분 내내 양팀 모두 무득점 상태가 지속되어 승부는 연장전에 돌입했습니다.

그러나 연장전에서도 역시 한 골도 터지지 않아 승부는 승부차기까지 가서야 결정나게 되었습니다.

호마리우는 브라질 2번 키커로, R. 바조는 이탈리아 5번 키커로 나오게 되었고,

이탈리아의 선축으로 운명의 승부차기는 시작되었습니다.

양팀 모두 1번 키커가 나란히 실축하고 2번 키커와 3번 키커가 골을 넣으면서 균형을 유지했으나

이탈리아의 4번 키커 다니엘레 마사로(Daniele Massaro)의 정면 슛이

브라질의 골키퍼 클라우디우 타파레우(Cl?udio Taffarel)의 손에 막혀 버렸고,

브라질의 4번 키커 둥가(Dunga)가 여유롭게 골을 성공시키며 3:4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이탈리아의 패색이 짙어진 가운데 R. 바조가 5번 키커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로써는 R. 바조가 성공시키고 브라질의 5번 키커가 실축해야만 하는 상황.

그러나 중압감이 증폭된 탓인지 R. 바조의 슛은 어이없게도 크로스바 위로 날아가고 맙니다.

그리고 그 순간 심판은 브라질의 승리로 경기 종료를 선언하였습니다.

R. 바조의 실축과 동시에 브라질은 통산 4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은 기쁨을 만끽했고,

이탈리아는 우승 문턱에서 아쉽게 좌절하게 되자 분루를 삼켜야 했습니다.

영웅으로 추앙받던 R. 바조가 역적으로 추락하는 잔혹한 운명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 실축 때문이었습니다.

R. 바조의 실축으로 이탈리아의 우승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된 그 순간,

로마에서는 울화통이 터진 팬들이 R. 바조의 초상화를 칼로 찢고 발로 밟는가 하면

R. 바조의 인형을 불태우는 등 R. 바조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실축한 것도 속상한데 패배의 원흉이라며 온갖 욕은 욕대로 먹었으니

R. 바조의 입장에선 과연 얼마나 상심이 컸을까요?

그리고, 이 실축은 결정적으로 R. 바조가 클럽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는 데 영향을 미치며

R. 바조의 커리어에도 오점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쓰고 보니 왠지 마음이 아픈 느낌이네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R. 바조의 승부차기 실축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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